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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없는 아이들의 비상구
(사)함께걷는아이들 조순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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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의 아름다움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더 잘 느낄 수 있다. 사춘기의 일시적인 방황이 아닌, 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 아이들. 출구 없는 아이들의 비상구가 되어 근 20년을 살아온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 조순실 공동대표가 거리의 아이들을 ‘찾아가는' 사역을 시작했다. 7월 26일 저녁 서울 관악구 신림동 도림천변에서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오픈식을 가진 것.
사단법인 함께걷는아이들 이사장으로 행사를 주관한 조 대표는 "그룹홈이나 쉼터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거리의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조 대표가 거리의 아이들을 만난 것은 1994년. 남편 김현수 목사가 안산에 교회를 개척해 목회하고 있을 때였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어요. 어느 날 새벽기도를 위해 교회에 갔는데 아이들 여덟 명이 자고 있는 거예요. 배고프다 해서 밥도 먹이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그 후로도 아이들은 교회로 스며들어 자곤 했어요. 때때로 똥을 싸놓기도 해 아예 교회 문을 잠그기도 했지요."
교회에서 쫓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다시 만난 아이들에게 다가가 사연을 들어보았다. 부모가 이혼하여 아빠와 살다가 아빠가 경제력을 잃어 전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아이 등등 저마다 집을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지역의 다른 교회와 몇몇 분들과 논의를 했다. 그해 10월부터 그 아이들과 함께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예수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1, 2년이 무척 힘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적응하기도 힘들었는데 연일 사건 사고가 터지는 거예요. 이웃에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살았는데 엄마가 옷 장사를 했어요. 혼자 있을 때가 많았던 아이는 외로웠는지 그룹홈 아이들과 놀고 싶어 했는데 엄마가 같이 놀지 못하게 했죠. 어느 날 그룹홈에 있던 아이와 그 아이가 본드를 흡입했는데 그 아이가 죽고 말았어요."
그 아이의 죽음은 마치 자신의 죽음과 같았다고 한다. 마침 남편은 지방에 세미나 참석차 가고 없을 때라 혼자 그 일을 감당해야 했다. 그 아이 엄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그 일은 더 확대되지 않고 잘 마무리 되었다.
"그룹홈 사역은 우리 부부가 계획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거리의 아이들이 우리 발목을 붙들었고 하나님의 계획이 계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 신앙의 뿌리도 약했던 조 대표는 남편이 개척교회를 하면서 신앙이 함께 성장했다. 그룹홈 초기, 심적으로 힘들어할 때 자원봉사를 하던 어느 집사님이 시편 읽기를 권했다. "시편을 읽으면 시원하고 편안해진다."면서. 아마 성경을 통독하게 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을 거라고 한다. 힘들 때면 성경을 읽었다. 시편, 잠언, 전도서, 구약과 신약에서 한 장씩. 어느 때는 시편을 통째로 읽기도 했다고.
들꽃 피는 세상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초창기에 호되게 훈련시키셨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죠."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룹홈도 늘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들꽃피는학교를 세우고,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들꽃피는화원도 개업했다. 2003년에는 ‘들꽃청소년세상'(이하 들꽃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사단법인 등록을 했다. 현재 들꽃세상은 그룹홈 12개, 지역아동센터, 쉼터, 방과후아카데미, 청소년연구소, 드랍인 센터까지 크고 작은 기관이 20개에 이른다.
들꽃세상 일이 확대되면서 1997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기관이 점점 커지면서 더 공부하라는 기관의 요청이 있었던 것.
"공부를 하면서 유익이 많았어요. 훌륭한 재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동역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3년 만에 석사 학위를 마치고 한동안 사역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숭실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고, 2010년 12월 <그룹홈 퇴소청소년의 자립을 향한 삶의 경험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해 올 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룹홈 실천 사례를 학문적 성과로 드러낸 셈이다.
"학비가 없어 걱정하던 차에 친구가 도움을 줬어요. 대학 시절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했는데 이제는 갚아야겠다며 장학금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것에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학금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조 대표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전력이 있다. 남편을 만난 것도 학교 선후배의 옥바라지를 하면서였다. 대화가 되고 성품이 괜찮다는 점만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방향이 옳다면 신념을 갖고 밀어붙이는 그 뚝심이 실천현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학문적 성과로까지 이어지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함께걷는아이들
조 대표가 ‘세상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지 어언 20년이 되어간다. 그는 출산율이 줄었으면 거리에 나오는 청소년 숫자도 줄어들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바깥으로 나돌고 설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현장을 자주 목도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탈학교 청소년 숫자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탈학교청소년들을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징검다리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일단 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확률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단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이 출범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들꽃세상 사역을 해오면서 그룹홈에도, 쉼터에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는 조 대표.
"함께걷는아이들이 출범하게 된 데는 한 독지가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그분이 유산으로 상속받은 것을 다 내놓았거든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악기를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아이들에게 악기를 배우게 했다. 은평, 서대문, 김포, 성남 등 5개 지역에 관악기 팀과 밴드 팀을 구성하고 강사를 파견해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악기를 다뤄요. 1년에 두 번 함께 캠프를 하면서 연습을 하고 얼마 전에는 용산구청 홀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어요."
‘함께걷는아이들'은 2, 3년 전부터 부스러기사랑나눔회와 협력해 인큐베이팅을 하고 작년 5월에 사단법인으로 정식 출범했다.
"아이들이 경제·사회적 배경과 관계없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것을 핵심가치로 학습 지원과 음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오픈식을 갖고 좀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는 (사)함께걷는아이들과 (사)들꽃청소년세상이 공동 운영하고 현대차그룹이 후원하는 거리 청소년 전문상담 센터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이동센터로 사용할 버스를 한 대 기증해주셨고, 버스 외관은 이제석 광고연구소에서 재능 기부를 해 디자인해 주셨어요. 무엇보다, 힘겨운 청소년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온 권미혜 선생이라는 좋은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밤에 아웃리치를 나가 아이들을 만나고 상담해야 하는 일은 웬만한 뚝심과 저력이 없으면 힘든 일이라는 것. 한 사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두 명의 선생님을 더 구하고 자원봉사자도 20여 명 확보해놓았다.
출구 없는 아이들의 비상구가 되어 준다는 의미가 담긴 ‘EXIT'가 크게 부각되어 있는 버스 외관은 산뜻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야간에 거리를 배회하는 가출 노숙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상담실, 시청각실, 다과실 등을 갖추고 긴급구조와 먹거리 지원, 의료 지원, 상담 및 교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8월 초에는 들꽃세상 아이들이 강원도로 도보 여행을 갈 때 이 차량도 함께 이동할 예정이에요. 돌아와서는 서울과 안산, 부천, 안양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겁니다."
그룹홈 퇴소 청소년에 대한 지원 체계 정비해야
2008년부터 (사)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 대표는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그룹홈을 퇴소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정책을 제언하기도 했다. 그룹홈은 시설과 위탁가정의 중간형태로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의 대리보호체계에서 앞으로 발전해나가야 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는 것.
"이번 연구를 통해 그룹홈 퇴소 청소년들이 독립생활을 일구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어요. 교육 기회, 학비 지원, 주택, 직장, 의료 서비스 등 모든 것이 이들에게는 절실한 과제지요. 이들이 성인으로 전환하는 데 필수적인 정부의 지원 체계가 정비되고 실현될 때 그룹홈에서의 대리보호가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룹홈은 3, 4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2004년에 이르러서야 아동복지법 제16조에 시설의 일종으로 분류되어 법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의 양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그룹홈에서 가정을 맛보고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룹홈에 대한 지원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조 대표의 말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 많이 배우고 있다는 조 대표. 교회로부터도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마음 아프지만, 아이들의 중심에 하나님을 심어주는 노력은 여전히 빼놓을 수 중요한 과제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조 대표의 발걸음이 힘차다.
◇ 7월 26일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오픈식에서 현대차그룹이 버스를 기증하고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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